2025년 5월 6일의 글

지난주 금요일, 퇴사 후 지급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회계 정산을 하는데 감자기 불안이 엄습해왔다. 실업급여가 아직 손에 잡히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앞으로의 지출이 굉장히 크게 보였다. 빚을 져야 하는 수준도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최소 비상금이 통장에 잠깐 없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다.

그래서 채용 공고를 몇시간동안 살펴보고, 수입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원래 a.shift 개발을 하려고 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다음날 우연히도 불안을 직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 직장에서 인연이 된 분과 대화를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과도한 책임감으로 인해 경직되고 긴장되어 부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직면했다. 이를 가장 명확히 드러낸 장면은 “스스로를 토닥이는 시간이 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일기 쓸 때 스스로를 칭찬, 인정하는 시간이 있다”라고 말하니, “꼭 잘한 것이 아니더라도 존재를 인정하고 토닥이는 시간이 필요해보인다”는 조언의 장면이었다.

나는 목표가 없는 시간을 의미 없게 느낀다. 이렇게 경직될 정도로 강한 열망은 좋은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생각들이 현실 그리고 자연과 동떨어져있었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수 있는데.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예전부터 절에서 책을 읽으며 속세와 긴 시간 떨어져 있고 싶었는데, 자원봉사를 하면 일주일동안 무료로 절에 머물 수 있더라. 너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당장 다음주에 해인사에서 보낼 일주일이 기대된다.

템플스테이를 예약하니 깊은 곳에 있는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나의 깊은 곳에 들어갈 때는 기록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2년만에 어렸을 때부터 써온 일기와 편지, 활동기록을 살펴봤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라는 무의식이 드러나는 기록이 군데군데 보였다.

기록들은 지금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한 순간에 문제의 악순환을 정의했다.

  1. 생존 신념의 강화: 내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있지만, 나를 보호할 사람은 없다
  2. 과도한 책임감: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한다
  3. 성취/완벽에 대한 강박: 완벽해야, 완전해야, 잘해내야만 안전하다
  4. 심리적 경직 + 우월감 추구: 우위에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5. 취약성 회피 + 도움 거부: 돕는건 좋은데, 도움 받기는 어렵다

문제를 시각화하니 개운하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보인다. 불안 덕분에 무의식 속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중요한 한계를 돌파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