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키는 26년 11월 7일, 당위가 아닌 재미로부터 시작되었다. 뾰족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이성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곳곳에 허점이 많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점이 공개되는 것이 매우 기대된다.
위키의 시발점?
나는 이미 생각을 담는 용도의 블로그가 있다. 그것도 여러개의… 업데이트가 중단된, 실패한 블로그의 보유자다. 하지만 나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을 탐색했고, 최근 자주 들었던 단어인 위키를 떠올렸다. 블로그와 위키의 공통점은 기록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아니 나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가? 기록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게 뭘까?
위키를 시작하는 시점의 나는 이성적이고 경직된 시간으로 삶을 절반 넘게 채우고 있다. 비이성적이거나 불확실한 것들을 견디는게 어려워서, 위험을 통제하는 대신 가능성도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경향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지식 관리 시스템에서부터 관찰된다. 노션/옵시디언/메모 앱 등을 사용하여 칸반/PARA/제텔카스텐/LLM-wiki 등의 프레임워크를 사용한, 그러니까 위계적으로 꽉 짜인 구조 안에서 지식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약 7년의 세월을 돌아보자.
어우 떠올리기만해도 피곤하다. 피곤한데, 심지어 나는 탐색 효율성과 관리 용이성 외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당연하다. 이것 외에 지식 관리 시스템에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제 안다. 내가 지식을 관리함으로써, 기록함으로써 얻고 싶은 것은 가능성이다. 원래의 나를 변화시킬만한 힘을 가진 그런 가능성. 그것 자체로 불확실해서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나를 예상치못한 어디론가 데려가줄 것은 확실한 가능성을 얻고 싶다.
블로그와 위키의 차이점
내가 기록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일단락 되었다. 나는 기록하고 싶은게 하도 많아서,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지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더 중요한건 블로그와 위키는 다른 것인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역할을 명확히 식별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기록하고 싶은 많은 정보를 적절한 공간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정보와 지식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위키는 정보, 블로그는 지식을 담는 공간이 아닐까? 기계적이고 명확한 구분이었다. 그러나 클로드 선생님께 검토를 받아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구분이 가능했다. 선생님은 블로그는 knolwedge stream, 위키는 knowledge garden으로 구분하는 것을 제안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정원이라는 비유는 개발자 마크 번스타인의 1998년 에세이 「Hypertext Gardens」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계획 없이 링크가 마구 뻗어 나간 하이퍼텍스트는 흥미롭지만 들어가기 싫은 ‘야생’이고, 위계적으로 꽉 짜인 구조는 탐헐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원은 야생과 실험실 사이에서 사람이 미지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가게 해 주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는 ‘하이퍼텍스트 정원’을 제안하며 인터넷에 사람이 미지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를 통해 daeun28 wiki가 지식 정원이 된다면 내가 원하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2015년 「The Garden and the Stream」에서 정원과 스트림을 대비한 마이클 콜필드도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는 웹이 스트림, 즉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블로그와 SNS에만 치우쳤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에게 정원은 공간으로서의 웹, 즉 통합하고 반복하며 사물들을 서로의 관계 속에 배치하고 재배치하는 웹이었다. 이렇게 쓴 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돕는 깊은 네트워크가 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러니까 번스타인과 콜필드의 생각을 빌려 블로그와 위키의 차이점을 해석해본다면, 블로그는 knolwedge stream, 위키는 knowledge garden이라고 할 수 있다.
초보 정원사
나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당분간 집중하고자 한다. 정원이 생각을 돕는 깊은 네트워크가 될 때까지.. 연결을 만들고 그 과정을 즐겨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만나는 가능성들이 나를 또 다른 차원의 나로 데려다줄 것이고, 그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그 시점의 나는 비이성적이고 불확실성을 견디며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위험해도 좀 놀아재끼는 나였으면 좋겠다. 뭐 꼭 이게 아니어도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