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나의 성숙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동일한 레퍼토리의 질문 또는 구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얼마나 평온하게 반응하고, 덜 타격을 입는지에 따라 성숙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첫번째 질문은 항상 같다. “엄마는 잘 지내냐” 라는 할머니의 질문이다. 나는 보통 이 말을 듣는 순간 얼어붙고 코르티솔이 과분비하여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아주 싸가지 없는 말투로 “네 잘 지내죠”라며 더이상 대화를 이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수동적으로 피력한다. 최근에는 첫번째 대화가 이런 식으로 끝난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추가 질문과 부탁이 이어졌다. 거절할 수 있는 힘도, 능력도 없던 미숙한 나는 인내하는 것 밖에 몰랐다. 그저 오랜 시간을 들여 혼자 삭힐 뿐이었다. 이 시간이 쌓일수록 할머니에 대한 거부감은 쌓여만 갔다.
내가 좋아하는 식혜를 해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연락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언제나 거부감과 별개였다. 할머니의 고구마줄기와 파김치, 꼬돌빼기의 맛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해만 갔다.
두번째 구박은 “친척들에게 연락 좀 해라. 나한테는 안해도 되니까” 라는 식이다. 이 구박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넘어 제3자가 포함된 구박이기 때문이다. 이 구박은 잠시동안 나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친척이라는 관계에서 마땅히 해야한다고 여겨지는 ‘안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 어린 시절 나에게 자원을 지원해주신 것에 대해 보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안타깝게도 죄책감은 항상 ‘원망’에게 지기 때문에, 할머니의 구박은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친척들은 내게 10년 넘는 시간 동안 부부 관계의 봉합을 권했다. 그 중 제일은 할머니였다. 내가 잘하면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엄마랑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고, 누르면 무조건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버튼이었다. 할머니 집에 머무는 모든 시간은 버튼이 눌리는 시간이었다. 나를 압박하는 모든 어른들에 대한 원망이 쌓이는 시간이었다. 아빠마저도 버튼이 눌리는 나를 방관했다. 할머니집 소파에서 자는척하며 몰래 우는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빠는 모를거다.
아빠는 효자다. 4남매 중 가장 자주 할머니집에 들려 농사일을 돕고, 집 보수를 돕고, 할머니를 챙긴다는걸 알고 있다. 명절에도 다른 친척들은 아주 가끔 방문하거나 가족들 없이 홀로 오는 반면, 우리 가족은 개근한다. 아빠에게 집안 행사 참석은 참 중요한 일이다. 집안일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끔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허점을 지적해도 아빠는 생각을 바꾸는 것 대신 내게 말 꺼내지 않는 것을 택한다. 그러니 아빠의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의 스트레스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거다. 그리고 나도 나름(?) 효녀라서 아빠에게 많은 것을 감췄다. 아빠가 덜 힘들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3명 양육 자체도 힘들텐데 나의 힘듦까지 추가 부담하도록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복잡한 각자의 사정이 얽히고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더이상 친척들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아주 가끔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능구렁이처럼 빠져나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이번 추석에는 거의 처음으로 가볍고 평온한 마음으로 할머니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아빠 집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뇌에 맴도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의 세계가 너무 넓어져서 아빠 집안이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내가 어려워하던 문제 하나를 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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