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자본주의, 과잉 생산과 소비의 시대에서는 목표가 뚜렷한 삶이 미덕이다. 꿈이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우러러 본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런 사람을 아닌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꿈을 실현하는 삶이 현 시대에서 워너비인 것은 맞는 듯 하다. 내가 태어나서 만난 거의 모든 어른들은 꿈은 크게 가질 수록 좋은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현 시대에서 꿈을 실현하는 삶이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한 것도 맞는 듯 하다. AI 덕분에 개인이 과거보다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진정성과 서사는 분명 경쟁력이 된다.

전그러나 유불리를 떠나 삶,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아쉽게도 삶이란 대단히 복잡하기에 꿈을 이루었는지, 이루지 못했는지, 단편적인 결과만 가지고 논할 수 없다. 나는 실제로 타인의 삶에 판단을 얹지 않기 위해 여러 방편으로 노력한다. 편리함을 중시하는 어떤 이들은 꿈을 이룬 삶은 꼭 행복할 것이라고,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분명 불행할 것이라고 함부로 지껄인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사람의 안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이 있을 수도, 은은한 미소를 띤 평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가 되기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꿈을 이룬 사람은 평화가,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불안이 있다고 이분법적으로도 말할 수도 없다.

성취, 그러니까 꿈을 실현하는 것은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 다음의 삶도 성취만큼 만족스러울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때 나는 꿈을 실현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이라 단정지었다. 그래야 정의하기 편리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쉬웠다. 실제로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서서히 달라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화를 나눔에 따라, 책을 읽고 글을 씀에 따라 달라졌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도 자아실현이 미덕이라 외치던 내가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삶을 만족스러운 삶으로 여기게 되다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이 더 자연스럽고, 온전하며, 나답고, 자기실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만족스러운 삶의 정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