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의 시대에서 마음의 평화가 간절한 개인에게 필요한 이야기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이렇게 기시감이 들 수가 없다. 독재와 파시즘의 징조가 패권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져 사랑은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았나. 내가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전과 비슷해 보인다.
당장 오늘, 내일 생존도 불확실한 시대에서 평화로운 일상은 하늘의 별따기 같다. 최근 심리치료,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마음의 불안은 때때로 유용하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기반이 되기도한다. 그러나 가끔은 번뇌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괴로우면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그 원인이 복잡해지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세계와 그 안에 실존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자연에 속한 존재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나름의 질서를 찾아나가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명확히 인식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허상에 갇혀 괴로워하는 시간, 이루지 못할 것을 내다보며 버리는 시간 대신 감각할 수 있는, 존재하는, 온전한 시간으로 여생을 채우는게 진정으로 삶이며 사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싯다르타는, 오랜만에 내게 경외를 주었다.
눈이 단지 구하는 것만 찾느라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기 쉽습니다. 항상 구하는 대상만을 생각하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구한다 함은 목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찾아낸다함은 자유로운 상태, 열린 상태, 아무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스님이시여, 당신은 구도자인 것 같습니다.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고빈다에게 싯다르타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