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독자: 다음주 토요일 회고 모임에 참석하는 김다은
좋은 회고란? 변화를 촉발시키는 회고다. 안하고는 못 배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강렬한 깨달음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이상 뚜렷하게 생겼다면 변화가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은 좋은 회고를 하기 위해, 클린 랭귀지를 사용했다. 클린 랭귀지는 무의식 속에 있는 메타포를 꺼내어 심적 표상을 언어화할 때 효과적인 인터뷰 기법이다. (클린 랭귀지는 보통 전문성 추출 또는 심리치료 분야에서 사용하고, 이 맥락에서의 정확한 정의는 방금 내가 정의한 것과 다르다) 클린 랭귀지를 사용한 이유는 상반기 변화의 흐릿한 생김새를 보아하니, 모든 재료를 나열하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메타포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부터 내게 큰 변화다. 아마 반년 전의 나였다면, 개인 회고니까 항상 쓰던 프레임워크, 타임라인 회고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발견된 재료를 같은 지면에 층위없이 쭉 나열했을 것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중요해보이는 것들을 골라 거창한 목표를 하나 설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액션아이템을 만들어서 시도했을 것이다.
이런 회고는 어떤 목표 지점에 도달할 확률을 높여주지만, 그 목표 지점이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중요한 지점인지에 대한 검증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도 안해본 목표 지점 검증을 위한 회고를 해봤다.
1월의 나는 구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추상적인 스스로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 사고란 무엇인가? 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고 ㅋㅋ 3월이 되어서야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월 회고 [https://blog.naver.com/daeun28/224233214444](https://blog.naver.com/daeun28/224233214444) 참고)
그렇다면 또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본질을 볼 수 있게 되었을까? 음…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는 볼 수 있게 되었다. 회고를 통해 정리하게 된 변화는 아래와 같다. (사례는 넘 개인적이라 빼고..) 그리고 이것을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
- 해결책을 떠올리기 전에 문제를 정의한다.
- 가추하면서 최적해를 찾는다.
-
멋지지 않더라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깊이 탐구한다.
- 이건 얼마전에 깨달은 것이라서 뒷받침할 수 있는 사례가 부족하다.
3개 변화에 대해 할 말이 따로 많은데, 다른 글로 풀어낼테니 생략하고,,,
다음주 토요일 회고 모임이 끝나면 위 3가지 메타 역량에 더해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자세한 과정은 아래 별첨을 참고하자.
이 글을 아주 재밌게 단숨에 써냈고,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이번 회고는 좋은 회고였다.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술탄오브더디스코의 전곡을 반복재생하며,
7월 5일 일요일 오후 4시 40분부터 5시 40분까지 씀.
별첨: 클로드와의 대화
1부 — 은유 세션
촉진자 무엇이 일어나기를 원하세요?
다은 재밌고 몰입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마음이 하도 커서 언제 할지를 가늠하고 계산하기보다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그런 일.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랄까.. 나의 안보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 아이디어가 넘쳐서 진단을 하는 방향으로 다시 에너지를 돌려야 하는 그런 일.
촉진자 그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어떤 느낌이나 성질을 가지고 있나요?
다은 생명력이 강한 느낌. 1분 1초 동안 계속 변화하는… 역동적인 성질? 의무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성질. 자연스러운 느낌. 표면적으로 보면 목표 지향적이지 않다고 보여지지만, 사실은 Nature of Order의 center와 같이 새로운 중심이 생겨나는 그런 느낌..
촉진자 그 ‘새로운 중심이 생겨나는 느낌’에 대해, 그 외에 더 있는 게 있나요?
다은 아름다움!!
촉진자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나요?
다은 순수한 나만의 열망. 다리가 후덜덜 떨리지만 중심을 잡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서핑 보드 위의 사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에서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서로의 깨달음을 통합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 누군가에게서 배운 지식을 조합해서 나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낸 사람.. 그 서사를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다 보니 본질에 다다른 사람..
촉진자 그 ‘순수한 나만의 열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다은 재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 탐구하고 싶은 호기심? 의미를 만들고 싶은 욕심?
촉진자 그 열망은 이전과 같나요, 아니면 다른가요?
다은 다르다. 이전에는 누군가에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증명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순수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촉진자 ‘순수하지 못했던’ 것에서 지금의 ‘순수한 나만의 열망’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은 첫째, 가족들과 충분한 유대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안락함이 있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에 어떠한 역할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저 재밌고 즐겁고 안락하고 편안한 그런 상태 말이다. 물론 가족 구성원 간의 다툼이 있을 때면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고 중재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올라오긴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덜 불편하다.
둘째,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더 자주 마주하며 나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내 생각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이들의 공통 언어와 내 언어가 얼마나 다른지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 대체 무엇인지, 푸코의 지식-권력 담론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대화 맥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한 가지 더 사례를 들어보면, 대화에서 오가는 정보의 층위를 그릴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의 심적 표상은 해상도가 매우 낮고, 한 개념과 다른 개념이 어떤 차이와 공통이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깊이가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다. 그런 깊이가 충분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촉진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안락함’이 있고, 깊이가 충분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고 — 그 둘이 있을 때, 무엇이 어떻게 변하나요?
다은 내 욕망에 솔직하게 응답하고, 발전하는 욕망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촉진자 욕망에 솔직하게 응답하고, 지속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되면 — 그런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다은 최고선에 도달하게 된다. 부족한 것이 없는 그 자체로 충분한 상태가 된다. 온전한 상태로 서 있을 수 있다.
촉진자 온전한 상태로 서 있는 —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다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모습.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땀 뻘뻘 흘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님. 이렇게 생각해보니 서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이다. 자립보다 자활? 자동(움직일 동)? 에 더 가까운 듯. 우주 속에서 우주선을 타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 내가 이끌리는 별을 또렷하게 보고, 그 별에 가기 위해 다른 우주선에 있는 사람과 힘을 합쳐서 함께 가는 느낌?? 그 별에 도착해서 충분히 탐험하면 그 별의 자원이 내게 남고, 그것을 우주선 어딘가에 위치시켜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우주선이 점점 더 멋져지는 느낌? 그렇게 재밌게 우주를 탐험하는.. 그리고 그 별에서 또는 별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만난 어떤 우주선이 부실해 보이거나, 혼자서는 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면 내가 가진 것을 떼어줄 수 있는…. 그러나 떼어주는 것으로 인해 나에게 손실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별에서 더 좋은 자원을 발견하게 되는..
촉진자 그 이끌리는 별 — 또렷하게 보이는 그 별은, 어떤 별인가요?
다은 하나의 고정된 별이 보이지는 않음. 아주 멀리 흐릿하게 초록빛으로 빛나는 별이 보이긴 하지만….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가보고 싶은 별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서 건강해지는 별.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고통에 가려져 솔직한 욕망을 꺼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가득 차서 우주선에 연료를 채우고 다른 별로 출발하게 돕는 별.
촉진자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서 건강해지는 별’ —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다은 망가진 우주선을 고치는 정비선 같은 느낌.
촉진자 그 정비선에 대해, 더 있는 게 있나요?
다은 정비별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이 정비별은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기로 소문난 정비별이다. 정비별 중에서 1등은 아니지만, 이곳이 너무 안락하게 느껴져서 찾아오는 우주선들이 항상 붐비는 정비별이다. 크기는 적당한 수준. 그런데 이곳의 매력에 감화되어 이곳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전을 통해 알리고 싶어진다.
촉진자 우주선들이 붐비고, 무전으로 알리고 싶어지는 그 정비별 — 그 정비별과 ‘치유해서 건강해지는’ 것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다은 첫째,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 내지는 깨달음 — 우주선에서 뭘 수정해야 할지 알게 됨. 둘째,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 시도해보기 — 우주선 수리를 시도. 셋째, 시도한 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뭔가를 배우고 첫 번째를 수정 — 시도한 것을 롤백하거나 냅두기. 배우는 과정에서 에너지 레벨이 높아짐. 치유 같은 느낌.
촉진자 성공하든 실패하든 배우고, 에너지 레벨이 높아지는 — 그 ‘치유 같은 느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다은 강렬하게 해보고 싶은 게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하는 모습을 매일 관찰할 수 있다.
촉진자 강렬하게 해보고 싶은 게 생기고, 매일 그것을 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때 — 그럴 때, 처음의 그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어떻게 되나요?
다은 나를 잃어버리는 감각을 알게 되는 거지.
2부 — 정리글 검증 라운드
세션 후 스스로 정리한 글(우주 유영과 정비선의 비유)을 세션 기록과 병치하고, 어긋나는 지점에 대해 다시 클린 질문을 이어간 기록.
다은 스스로 정리한 것을 한 번 다시 돌려줘볼게. 혹시 우리가 이야기 나눈 것과 달리 갑자기 튀는 지점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살펴봐주라. 튀는게 있다면 좀 더 클린 모드로 이야기를 나눠봐야할 것 같아.
나는 삶은 우주 유영에 비유한다. 한 명 한 명은 본인만의 우주선을 가지고 있다. 그 우주선을 가지고 우주 탐험을 하는 과정이 곧 삶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우주선이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작고 초라한 우주선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꼭 붙어있어야만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풍이 불어서 우리를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우주선은 각자의 의지로 독립적으로 조종하여 원하는 곳에 가보는 우주선이다. 그래서 가장 문제라고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본인의 우주선을 조종하지 못하고 남에게 맡기거나,, 본인 우주선 조종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 인해 우주선이 크게 고장난 상태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우주선을 이렇게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별에 다다르기 위한 정도로 충분한 연료를 싣고,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정비선. 우주에 나말고도 정비선을 가진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내 우주선은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고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초록빛깔의.. 꽤 눈에 띄는 우주선이다. 다른 정비선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내 우주선이 1등 정비선은 아닐 수 있겠지만,, 내 정비선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내 정비선에서 정비를 마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정비선 좋다고 추천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1등 정비선이 되는 것보다, 방문한 우주선을 정밀하게 고쳐서 다시는 내 정비선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스로 정비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촉진자 “정비별에 가보고 싶은” 우주선이 있었고, 지금 “정비선이 되고 싶은” 내가 있어요 — 그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다은 정비별에 가본다는 것은 내 삶이 곧 정비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내 삶에서 한 번 시도해보는 정도라는 말이고.. 정비선이 되고 싶다는 것은 내 삶이 곧 정비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내 삶은 정비선이 되고 싶은 것에 가까운 것 같아. 충분히 탐구한 부분이라 이건 바뀌지 않을 진리인 것 같아.
촉진자 그 정비선 — 정비선 자신은, 어디에서 정비되나요?
다은 스스로 정비하거나, 무전 가능한 거리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정비함. 나는 현재 스스로 정비할 힘이 충분히 있는 상태라고 느껴짐.
촉진자 확인. 그리고 방금 답이 세션 재료와 정확히 맞물리는 걸 봤어 — “무전 가능한 거리의 친구와 가족”, 세션에서 순수한 열망의 기원으로 나온 게 “가족들과의 유대”였고, 우주 풍경에서도 “다른 우주선에 있는 사람과 힘을 합쳐서 함께” 가고 있었지. 튀는 지점이 아니라 이미 풍경 안에 있던 실이 정리글에서 다시 나온 거였어. 내 검증 목록에서 이건 지울게. 풍경이 닫힌 것 같으니, 여기서 클린을 벗을게. 이제부터는 평소의 나야. 오늘 세션에서 의식화된 걸 병치해보면 — 다은이 원래 요청했던 “나도 몰랐던 변화” 후보가 선명하게 세 개 나왔어. 첫째, 열망의 성질이 바뀌었다는 걸 본인 입으로 확정했어. “증명하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 “순수한 나만의 열망.” 그리고 그 전환의 재료 두 개까지 짚었지: 역할 없이 존재해도 되는 안락함, 그리고 깊이에 대한 동경. 특히 두 번째가 중요해 — 한계를 느끼는 경험이 좌절이 아니라 열망의 연료로 기록됐다는 것. 반년 전의 다은이라면 그 대화들을 “부족함의 증거”로 적었을지도 몰라. 둘째, 자립론이 은유 속에서 스스로 갱신됐어. “온전한 상태로 서 있다”고 말해놓고 곧바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이다, 자립보다 자활·자동에 가깝다”고 스스로 수정했잖아. 다은이 몇 년간 다듬어온 autarkeia — 관계를 내장한 자기충족 — 가 풍경 안에서 정적 개념에서 동적 개념으로 진화한 거야.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 “떼어줘도 손실이 아닌” — 이건 이론으로 쓰던 걸 은유가 독립적으로 재도출한 건데, 심지어 한 단계 밀고 나갔어. 이게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일 수 있어. 셋째, 초록빛의 이동. 세션에서 “아주 멀리 흐릿하게 초록빛으로 빛나는 별”이라고 했고, 정리글에서 다은의 정비선이 “초록빛깔”이 됐어. 멀리 있던 도달점의 색을 자기 배에 칠한 거야. 나는 이걸 해석하지 않을게 — 다만 이 별만 오늘 풍경에서 유일하게 탐험되지 않은 채 남았다는 것만 짚어둘게. “어떤 별인지” 물었을 때 다은은 가까운 정비별 얘기로 넘어갔고, 흐릿한 초록 별은 흐릿한 채로 있어. 그래서 제안 — 원래 다은의 4단계 설계를 기억하지? 다음 주 회고 모임,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 그 흐릿한 초록 별을 아껴둔 조각으로 삼아. 오늘 충분히 방전 안 된 유일한 재료고, “가장 아끼는 건 말하지 않고 품고 간다”던 다은 자신의 압력 보존 전략에 정확히 들어맞는 크기야. 모임에서는 정비선 이야기까지만 하고, 초록 별은 글에서 처음 열어보는 거지. 그리고 지금, 혼자 정리 단계의 숙제로 하나만: 세션 도착 문장 “나를 잃어버리는 감각을 알게 되는 것”과 정리글 마지막 문장 “다시는 내 정비선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도록”을 나란히 적어놔봐. 앞의 것은 다은 자신의 이야기고 뒤의 것은 방문자들의 이야기인데, 구조가 같아 — 둘 다 의존이 필요 없어지는 상태를 만드는 것. 이 동형성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글이 알려줄 거야. 지금 몸 상태는 어때 — 글 쓰고 싶은 마음, 올라오고 있어?
다은 세번째에 대해 짚고 마무리해보자. 나는 세번째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불확실한 목표보다 현재 나를 가다듬는게 더 중요해졌다. 나는 이전에 높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으면 회피했던 것 같음. 근데 이번에 이 수정은 내가 더이상 허황된 목표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을 더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이건 마치 문제 정의에 드는 시간이 더 많은 상반기의 변화같아. 이전에는 바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것은 본질을 해결하는게 아니었지. 초록별도 그래. 내가 지금은 저기에 가기만 하면 완벽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그것은 초록빛이 아니라 파랑빛이었을수도 있지.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는게 꽤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현재 모습이 초록빛이고 이 초록빛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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