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영업사원'이자 '가장'이다. 그레고르는 해충으로 변신하고나서부터 2개의 역할 모두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린다. 해충이 된 그레고르에게 남은 정체성이라고는 '가족의 일원' 정도다.

여동생 그레테는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돌본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얻어 ‘가장’의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그레고르가 수행하던 역할은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대체된다. 그의 역할을 다른 이가 대체한 후, 어머니는 변신한 모습을 보게 된다. 보고싶던 아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 과정에서 그레고르는 모든 말을 듣고 있지만, 가족들과 전혀 대화하지 못한다. 대화가 없으니 아버지는 정신을 잃은 어머니를 보고 그레고르가 어머니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오해한다.

이 장면에서 그레고르는 오히려 어머니를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드러나지 않는 그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다. 언어가 다르고 대화가 안되면, 해석은 힘이 센 사람의 몫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오해를 바탕으로 그레고르의 존재를 없애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과를 던진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카프카가 경계인으로서 해석당하고, 오해당한 시간을 엿볼 수 있다.

강자들의 오해는 쉽다. 반면, 약자의 진심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휴리스틱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지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러니 강자들은 약자를 헤아리지 않고, 약자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을 턱턱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 구도는 소설 곳곳에서 반복된다. 그레고르의 존재를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는 곳은 없었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는 직장이라는 공동체에서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로 해석되어 버려졌다. 돈을 벌어올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돌봄이 필요한 징그러운 존재’로 해석되어 버려졌다. 가족들의 이러한 해석은 무해한 그의 행동을 위협적으로 여기고, 그들의 일시적인 불행이 그레고르로부터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이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군”이라는 아버지의 말은 그의 죽음을 ‘감사할 일’으로 해석한, 가족의 폭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