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인가 모든 혐오를 혐오한다는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명확한 계기는 모르겠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할만한 말이긴 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스스로 하면서도 사실 혐오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올해 나의 목표는 좀 더 깊은 사고를 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니까 내가 말하는 혐오가 뭔지 사고하고 표현해보고 싶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혐오의 정의는 ‘미워하고 싫어함’이다. 그러니 혐오를 하는 객체와 혐오를 당하는 객체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명사이다. 내가 혐오를 하는 객체가 되는 상황을 되돌아보면, 99%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였다. 내가 조급하고 불안하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꼬투리 삼아 다른 객체를 혐오할 수 있는 이유로 삼았다. 혐오는 아주 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피하게 해준다. 그러나 효과는 아주 일시적이다. 혐오를 하는 동안에만 잠깐 유지될 뿐이다. 혐오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스트레스 가득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반대로, 내가 혐오를 당하는 상황을 되돌아보자. 혐오를 당하는 것은 일상이 무너질만큼 아주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사회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면 없던 불안도 생기지 않을까? 있던 마음의 여유도 싹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혐오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혐오의 굴레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사람 대 사람, 사람 대 동물을 넘어 집단 대 집단으로 확장되고,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대립하게 되고, 평화가 멸종할 수 있다. 혐오가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나서부터는 혐오의 굴레에 빨려들지 않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첫째, 마음의 여유를 일정 이상으로 유지할 것. 둘째,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스스로 해치울 것. 셋째, 누군가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스스로 해치울 수 있게 도와줄 것.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언젠가는 내게 보이는 혐오의 굴레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발판삼아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혐오의 굴레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