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이 없다고 느낀 23년 겨울을 지나 24년에는 나다움을 찾고 정리했다. 그리고 나다움이라는 키워드를 뒤로하고 일단 중용을 실천하고자 했던 25년이 지나간다.

어제는 나다움을 좇던 시절에 알게 된 분을 만났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내면의 이유 사이 연결이 희미해질 때 다시 선명하게 만든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내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대화가 즐거웠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내가 나다움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23년 겨울의 나는 나다움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가지고 싶고, 명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큰 일이 일어날것만 같은 불길함이 들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바라봤다. 나다움을 가진 사람을 우월하다고 느꼈다. 집착 같은 것이었다.

24년에 그렇게도 좇던 나다움은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삶의 이곳저곳을 뒤적거려봤지만, 허탕을 칠 뿐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가지지 못하면 더 안달이 나기에, 힌트를 종합하여 다은 v1.0을 명문화했다. 자랑스러웠지만,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여전했다.

25년에는 나다움이라는 키워드를 잊고 일단 중용을 실천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나다움을 만났다. 더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고, 이걸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충만하다.

그러니 나다움은 고정적인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찾고자 노력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 믿는 선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날 세렌디피티를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작년에는 하나의 노션 문서로 정리할 수 있었던 나의 납작한 삶은 이제, 언어로 정리하기 복잡할 정도로 입체적으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